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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자센터 삶 정광진 대표. ⓒ 프로메테우스 강서희 |
작지만 강한 이미지를 가진 정광진 씨의 하루 일과는 이랬다. 아침 10시 쯤 기상(오전 약속이 있으면 일찍 기상해서 사무실 출근한다)해서 점심 약속으로 대부분 하루가 시작한다. 점심 일정은 노무법인 삶 혹은 노동자센터 삶 혹은 전국노동자회 업무로 채워지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지방출장을 간다. 대부분 노무 상담, 노조 방문이나 교육 등의 일정이다. 저녁은 대부분 술(?) 약속이 잡혀있고, 집에 들어가서 술이 깨면 하루업무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만난 사람과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하고, 보고서 작성한다. 그러다보면 새벽 4시에 잠이 든다. 늦으면 7시에 잔다고 했다. 어쩐지 아침 10시에 일어나는 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늦게 자기 때문이구나. 대신에 주말 등 쉬는 날에는 제대로 쉰다고 했다. 그래야 재충전을 할 수 있다고.
정광진 씨는 현재 전국노동자회 운영위원장이고, 노무법인 삶 법인이사이며, 노동자센터 삶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바쁘게 살고 있는 그와 이미 잡아두었던 인터뷰 약속은 쌍용자동차 선고공판 일정으로 인해 설 이후로 미뤄졌다.
노동자의 삶을 고민하다
정광진 씨는 지난 95년도에 노동자운동에 입문했다. 공기업 민영화, 사유화 등을 내용으로 공공부문 노동조합들과 연계된 교육ㆍ연대활동이 주된 활동이었다.
96년 12월, YS정권 당시 신한국당에 의해 노동법ㆍ안기부법이 7분 만에 날치기 통과가 됐고 민주노총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범국민대책위를 꾸렸다. 그는 범국민대책위원회에서 상황실 캠페인 팀장을 맡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날치기 통과’라는 도덕적 결함을 이야기했고, 그것에 분노했다. 그러면서도 개악된 노동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적었다. 통과된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정리해고 명문화, 변형근로제 도입, 공무원 단결권 불허, 현재 노동자운동의 쟁점으로 형성되어 있는 복수노조의 원칙적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문화 등 지난 시기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일구어 왔던 기본적인 권리마저도 부정되는 악법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거리에서 선전전을 하고 ‘집회 중심’의 연대투쟁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노동법을 깊이 있게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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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진 노동자센터 삶 대표 ⓒ 프로메테우스 강서희 |
97년 IMF 금융위기도 왔다. 비정규직이 늘어났다. 파견법(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 곧바로 시행되면서 간접고용 비정규직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정리해고 된 노동자가 다시 비정규직으로 재고용되는 양상들도 연출되었다.
그런 시대상황에서 그는 비정규직 문제를 고민했다. 2000년 12월 4일부터 2001년 5월 13일까지 이어진 517일간의 한국통신비정규직(한국통신계약직노동조합)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심각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헌법에서 기본적 권리로 보장되어 있는 노동3권조차도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비정규직 싸움은 정규직들의 투쟁 양상과도 차이가 크다. 비정규직 투쟁은 정말 척박하고, 치열하며, 장기화되는 일반적 경향이었다. 비정규직 부당해고 투쟁의 장기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정규직들과의 마찰이다. 같은 사업장 내 노동자들조차도 같은 노동자라는 일체감이 무너지고 있었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조를 탄압하는 경우 역시 허다했다.
다른 하나는 싸울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전무했다. 사용자들은 그들이 가진 풍족한 금원으로 사회여론을 사고, 시간도 샀고, 노조를 탄압할 수 있는 여건을 성숙시켜 나갔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빽’도 없고, 돈도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가 전부였다. 그나마 함께 믿고 의지했던 동료들조차도 등을 돌리고 있으니 그 삶이 얼마나 척박했을지는 불 보듯 뻔했다. 결국 그와 같은 사회적 풍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하여금 북받치는 설움을 치미는 분노로 바꿔놨고, 결국에는 ‘누가 이기나 끝까지 해보자’라는 오기와 자존심만으로 그 모든 것들을 인내하며 버텨내야만 했다.
노동자와 소통하고, 상담하고, 교육하는 삶
1500만 노동자라고 한다. 민주노총, 한국노총에 가입된 노동자는 150만 명 남짓. 10% 정도가 조직된 노동자들이다. 지하철 1칸에 타고 있는 사람이 100명이라고 한다면 그 중 50명은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서로는 평범한 시민으로 불려 왔다. 한국통신 계약직 투쟁을 경험으로 비정규ㆍ미조직 노동자들과 일상을 소통하고 싶었다. 현장으로 협소화된 일상들을 현장을 뛰어넘는 공간에서도 풀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 고민을 함께 해준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이 일부를 출자해서 2003년 4월 1일 ‘노동자센터 삶’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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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법인 삶과 노동자센터 삶은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다. ⓒ 프로메테우스 강서희 |
노동 상담을 하다가 2004년에 한국산업인력공단 산하에 있던 직업전문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 교사들을 만났다. 5~6개월을 상담하고, 교육하면서 노동조합을 설립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미 정규직 노동조합은 규약을 통해 비정규직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그 문호를 개방해 주었다. 다행이었다. 비정규직 교사들의 노동조합 가입원서를 들고 정규직 노조에 찾아 갔으나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규약과 달리 정규직 조합원들은 비정규직들을 같은 조합원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정규직 노조에 복수노조 문제로 인해 노조설립조차 불가능하니 규약개정을 통해서라도 비정규직을 가입범위에서 제외시켜달라고 요청했다. 두 번의 회의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의장을 둘러싼 상태에서 세 번째 회의 끝에 겨우 통과될 수 있었다.
그렇게 2004년 9월 11일, 한국산업인력공단비정규직노동조합(줄여서 ‘산비노조’, 지금의 전국평생교육노동조합 - 줄여서 ‘전평노조’라 칭함)이 설립되었다. 그리고 2005년도 66일간의 ‘무기한 서울상경 전면파업’을 통해 정규직 전환의 물고를 트는 자그마한 승리를 얻어냈다.
전국노동자회도 2007년부터 비정규직ㆍ미조직 노동자들의 문제에 방점을 찍고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지방 출장 중의 일부는 전국노동자회 지역위원회를 통해 들어온 상담을 하기 위해서다. 자문을 하고 있는 노동조합에서도 체불 임금 등의 상담요청이 들어온다.
최근 지난 13년 동안 박물관 지하창고에 처박혀 있던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상담요청도 늘고 있다. 동시에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되어 있는 노조설립 자유주의 원칙조차도 복수노조 금지규정을 들이밀고 까다로운 절차만을 강요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지 고민이 많다.
노무법인 삶에서는 대부분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들의 해고와 금융위기로 인한 임금체불 사건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복수노조 금지와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와 관련해서도 사업장 유형별로 대응전략을 세워 나가는 중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법이 있는 자들에게 혜택이 가는 경우가 많다보니, 노동자들이 사용자에게 주눅 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법은 끊임없이 피땀 흘리며 싸워왔던 투쟁의 산물임이 분명합니다. 역사가 증명해왔던 사실조차도 한국사회의 오늘은 더욱 움 추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면서 다치거나 질병이 들더라도 조금 더 일하기 위해 참고 인내하며 혼자서만 끙끙 앓는 실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가 전부인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공간은 더욱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굳이 바라자면, 제발 주눅 들지 말고 억울하거나 찜찜하게 느껴지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풀기 위해, 그 잃어버린, 여전히 잃어버리고 있는 소중한 권리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셨으면 합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의 권리는 그 누구라도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꼭 깨어나시길 바랍니다.”
- 노무법인 삶 : http://www.nodong21.net/, 02-702-5973